쾌락적인 안녕감과 자아실현적 안녕감

유쾌함과 즐거움 간의 구분은 긍정 심리학에서 자주 발견되는 또 다른 주요한 주제와 관련된다. 안녕 상태의 개념화에 있어서 쾌락적인 안녕감과 자아실현적 안녕감 간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제안된 바와 같이, 가치 있는 삶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며, 놀랄 만큼 수많은 종류의 목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로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안녕을 정의하고 추구하는 방법들에 대한 하위 그룹을 확인하려고 시도해 왔다. 긍정 심리학의 연구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그러한 하위 그룹화의 한 가지는 안녕에 대한 쾌락주의와 자아실현적 접근에서 볼 수 있다.

쾌락주의적 접근은 위에서 논의된 유쾌함에 대한 관점과 유사하다. 쾌락주의는 가치있는 삶을 정의하는 오랜 접근 방법 중 하나이며, 풍성한 삶의 기본적 구성요소로서 유쾌함에 중점을 둔다. 가장 좁고 최대한으로 제한된 쾌락주의의 형태는 안녕의 추구가 본질적으로 개인의 육감적인 쾌감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쾌감의 단순한 추구는 풍성한 삶에 대한 가장 오랜 접근 중 하나이지만, 이러한 형태의 쾌락주의는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회에서 자기 패망의 길이며 쓸모 없다고 여겨져 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육감적인 쾌감은 단기적이며 그것을 계속 얻고자 하는 지속적 분투를 가져 온다는 사실, 그리고 유일하게 그것에만 집중했을 때는 그 어떤 지속적인 성격의 변화 혹은 개인적 성장을 낳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쾌락주의적 접근이 반드시 자기탐닉 또는 삶에 대한 “나 우선”의 태도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더 넓은 형태의 쾌락주의는 쾌감이 대부분의 인간 행동의 기본이 되는 동기적 힘이라는 점을 포함할 뿐 아니라, 특정한 쾌감은 타인과의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예컨대, 쾌락주의적 접근의 몇몇 종류들은 가족생활이나 시민으로서의 참여활동을 누구든 참여한 사람에게는 쾌감과 만족감을 최대화해 주는 한 가지 방법으로 보았다. 이 개념을 쾌락적 안녕감의 좀 더 “개화된” 정의에 적용한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높은 수준의 행복을 창조해내는 것이 쾌락적 안녕감의 목적이 된다. 쾌락주의의 이러한 형태는 역사를 통틀어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수많은 개념적 해석의 기본 전제가 되어 왔다. 이 점을 유념할 때, 쾌락주의적 관점의 주된 목적은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풍성한 삶은 행복, 만족감, 충족감, 또는 기쁨과 같은 긍정적 정서의 관점에서 정의되었다.

이와 달리, 자아실현적 접근은 안녕을 한 사람의 잠재력 발현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우, 안녕은 행복의 극대화와 관련될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자아실현적 안녕감은 대부분 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실현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자아실현적 접근은 가장 바람직하고 최고선을 가장 잘 나타내는 가치와 덕성에 따라 인생을 사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 접근의 초점은 잠재력을 확장하고 개인적 성장을 장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앨런 워터맨(1993)은 자아실현적 면모를 “개인적 표현성”이라고 불렀다. 그는 안녕감에 대한 이러한 접근이 한 사람의 최선의 잠재력 발전과 진정한 자아의 실현을 돕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안녕에 대한 쾌락주의적 접근과 자아실현적 접근은 사람들이 가치 있는 삶의 본질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가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더불어 이 두 가지 개념적 해석은 심리학이 안녕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측정하는지에 있어서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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