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역사 – 르네상스부터 계몽 시대

르네상스 시대 동안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개념을 예술가로 바꾸었다. 이러한 개념의 변형에는 두 가지 관련된 변화가 기여했다: 예술가들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과 개인주의의 발생이다. 한 가지 영구적인 변화는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상승과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신념이었다. 분명 역사를 통틀어 당대 사회에서 창의적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가가 아닌 장인으로 간주되었다. 창조적 예술가의 개념은 그림, 조각, 음악, 또는 건축으로 표현된 개인적 시각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개인적 시각에 대한 생각은 중세의 예술가들이 누릴 수 없었던 특정한 개인성과 독특성을 암시한다. 개인주의의 발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에 중대한 변화를 야기하는 등 궁극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17세기 말까지,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유지되고 있었다. Lowry는 “17세기의 역사적 중요성은 단연 과장이 아니다. 서구적 사고가 최초로 확연하게 현대적이 되었기-기분, 성향, 목적, 그리고 전제 면에서-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선각자들이 옹호한 새로운 세계관은 두 가지 일반적 개념에 기초했다. 첫 번째는 이성적인 사람은 스스로 무엇이 옳고 궁극적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은 세상 일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찰에 기초한 이성을 사용할 것이다. 요점은 논리, 객관성, 그리고 경험주의, 즉 유효한 지식은 오감에 근거한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이다. 두 번째 생각은 “우주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며 일종의 질서정연한 시계장치이다. 그것의 모든 부분과 소유물은 기계적 인과 관계의 냉혹한 법에 따라 똑같이 지배된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기계주의라고 알려지게 되었고, 자연의 사건과 인간 심리학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경험주의, 이성주의, 그리고 기계주의에 대한 관심은 인간 본성이 단순하고, 이해할 만하며, 명료하다는 인상을 형성했다. 제러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사회 개혁가들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좀 더 안정적이고 계몽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 어떤 행동이 옳고 윤리적이며, 또는 풍성한 삶을 촉진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이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공리주의, 즉 어떤 행위가 최대 다수의 행복을 증진한다면 그것은 옳고, 그렇지 않다면 옳지 않다는 신념의 철학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 개념을 쾌락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공리주의 신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수의 행복이 인간 행동의 궁극적 목표이며, 행위의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녕, 행복, 그리고 풍성한 삶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향한 희망과 약속이 탄생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일부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 권력 구조가 개인의 복지와 갈등 관계에 놓일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사회 구성원은 그 상태를 던져버리고 개인의 자유 증진에 더 잘 이바지하는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할 당시 이것을 새로운 정부의 기본 원칙으로 세웠다. “우리는 이 진리를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의 권리를 포함한 절대적인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 받았다.” 온 나라가 개인을 귀족 계급 이상으로 높이고, 시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위한 결정권, 즉 이전엔 오직 지배계층에게만 허용되었던 권리를 허용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행복의 추구는 이제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이다. 민주주의는 공리주의와 연합하여, 이론상 최대 다수의 행복을 창출하는 새로운 정부의 체계를 탄생시켰다. 이제 행복의 추구는 안녕을 최고로 향상시킬 사회 환경의 추구 역시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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