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역사 – 낭만주의와 19세기

19세기 초, 서구 개인주의의 성장은 개개인을 독특하게 만드는 감정적 표현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개성”이라는 단어는 Alexis de Tocqueville이 새로이 생겨난 미국의 관점을 묘사할 때 처음 등장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감정적 경험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운동은 당시의 지식 계급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영적인 것에서부터 세속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범주의 감정적 삶을 탐구하였다. 어떤 때는, 감정 자체보다는 감정의 강도가 중요했다. 예를 들면, Morton Hunt(1959)가 말하길, “전형적인 낭만주의자들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 그러나 성적인 측면보다는, 낭만주의자들은 상황에 따라 감성적이 되거나, 우울해지고, 광포해지기도 하며 때론 눈물을 자아내는 것 등을 즐겼다.” 그들은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는 능력이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 시기 동안, 개인의 감정적 표현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환경이 개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만났다. 그 결과 “진정한 자아”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의 저변에 존재한다는 의견이 생겨났다. 오늘날, 안녕에 관한 수많은 관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표현하라고 촉구한다.

17세기 초반, 청교도들은 사랑과 결혼의 개념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에 살고 있었지만, 실로 새로운 생각을 소개했다: 가족 내에서, 남녀는 서로에게 좋은 동료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 청교도인들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해야만 하는 감정의 조화를 강조했다. 한 청교도 작가는 “남편과 아내가 더 가까워져야 하며, 지구 상의 다른 누구에게보다 서로에게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애정과 그들이 함께 형성하는 독특한 정서적 유대에 기초한 결혼의 개념 역시, 개인주의가 발생한 데 따른 결과이다. 이러한 유형의 결혼과 사랑은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정서적/법적/종교적 헌신에 첫발을 디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과 함께 가족, 친구, 관습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개인적 자율성을 요구한다. 또한, 사회의다른 어떤 권위보다 개인의 소감과 감정이 결혼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사랑 역시, 이제 세상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덜어주는 주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개인주의의 융성이 가져온 또 다른 결과이다. I. Singer(1987)는 이 시점에서부터 “낭만적 사랑은 … 변형된 자아, 한 사람의 또 다른 자기, 그리고 한 사람의 결함을 보완할 이성 간의 하나됨이 이루어지고, 개인의가장 깊은 의향에 응답하며 완전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상대로서 ㅅ ㅓ로를 대하게 되는 사랑이다. … 이러한 대상이 한 사람이 결혼하게 될 사람이고 둘은 황홀한 육체적 연합을 이룰 뿐 아니라 영속적인 유대를 확립하게 된다”고 했다.

물론, 오늘날의 서구 산업 국가의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유일하고 진정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두 사람이 서로에게 헌신해야 하는가의 여부를 궁극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네”라고 돌아온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 둘이 남은 인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많은 이들에게는 사랑과 친밀감의 추구가 삶의 중대한 활동이며, 진정한 행복을 주는 궁극적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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